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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1(고전주의 미술)에 이어 바로 작성한다는 것이 며칠 게으름을 피우는 사이 해가 바뀌었다. 

 

이창용 작가, 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 더블북

 

 

파블로 피카소와 함께 20세기 최고의 화가로 불리는 현대미술의 대표 화가인 <마르크 샤갈(Marc Zakharovich Chagall, 1887~1985)>은 러시아 제국 출신, 유대인으로 제1, 2차 세계대전을 겪었다. 8남매 중 장남이었고 가정형편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미술적 재능이 어릴 적부터 뛰어났기에 후원을 받아 23세에 파리 유학길에 올랐다. 

 

파리 유학 시절 초기 5년간(23~28세)이 그의 전성기였고, 그 기간 동안 다양한 미술 기법을 터득했다. 그 이후로는 반복이라 볼 수 있다는 이창용 작가의 설명~

 

색채의 마술사로 표현되는 마르크 샤갈은 피카소의 큐비즘(입체주의)과 마티스의 포비즘(Fauvism, 야수주의) 사이에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그린 화가이다. 

 

이날 이창용 작가의 해설로 인해, 그간 난해하기만 해서 추상적인 느낌만이 강했던 마르크 샤갈 그림을 모두 해석할 수 있게 되었다. 

 

샤갈이  살아 온 배경에 대해서 조금 이해가 곁들여진 채로 그의 대표작 몇몇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바이올린 연주(The Violinist), 1913」, 「나와 마을(I and the Village), 1911」 

 

제대로 유학 준비를 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샤갈의 프랑스 유학 생활은 언어장벽이 높았다. 그로 인한 외로움과 향수병... 20대 초반의 나이에 그것도 유대인 출신으로 러시아에서 압박을 받았고 빈곤했던 삶에 고향에 대한 그리움?! 

 

해군장교 전역을 한 이창용 작가가 20대 초반의 20~30명 부대원을 통솔했을 때, 단 한 명도 고향이 그리워서 병이 나는 사람은 없었다는 경험담처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라기 보다는 고향에 두고 온 연인에 대한 상사병에 가까웠을 것이다.

 

사랑하는 연인이자 훗날 아내가 된 벨라 로젠펠트(Bella Rosenfeld)이 고향에 있었다. 하지만 샤갈은 후원을 받아 유학길에 오른 만큼 성과를 얻기 전까지 귀국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바이올린 연주자」, 마르크 샤갈,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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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샤갈은 캔버스를 살 돈이 마땅치 않아 테이블보 등에도 그림을 그렸다고 하는데 이 바이올린 연주자의 옷에서 보이는 그 격자무늬와 같은 것은 그 테이블보의 문양이 드러나 보이는 것이라 한다. 

 

초사실주의로까지 비춰지는 샤갈은 사실만을 그렸다한다. 

 

어디를 봐서?!

 

「나와 마을(I and the Village)」, 마르크 샤갈, 1911 / 뉴욕현대미술관

 

그리움에 사무쳐 꿈속에서 고향을 보았고, 그것을 그림으로 옮겼다면?

 

사실 그의 그림은 전날 밤 꿈속에서 본 고향 가족, 마을, 이웃 그리고 약혼자 벨라를 표현했다. 꿈이라고 생각한다면 전혀 초현실적인 것이 아니다. 사실인 것이다. 

 

위 두 그림에서 녹색 얼굴로 표현된 사람에 대해서는 샤갈이 별도의 해석을 남기지 않았다는 이창용 작가의 부연 설명이다. 

 

인상파는 한순간의 감정(인상), 느낌을 표현한다. 

 

1914년 샤갈은 결혼을 하기 위해 러시아로 돌아갔다.

 

어느 날 벨라가 작업실로 와서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아요?"라고 샤갈에게 말했다. 무슨 날이었을까? 아내가 남편에게 물었을 때 남편이 당황하는 질문 중 하나이다. 흡사 "뭐가 바뀌었는지 알아?"라는 것을 묻는 것과 같은 질문~

 

벨라는 샤갈에게 "당신의 생일이에요~"

 

샤갈의 생일(1915, MoMA)」은 사랑하는 벨라가 자신의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해 꽃다발을 들고 작업실에 찾아왔던 날 자신의 날아갈 거 같은 기분을 표현한 것이었다.

 

「생일」, 마르크 샤갈, 1915 / MoMA

 

 

그 해 샤갈은 벨라와 결혼을 했고 3년 후인 1918년 아이(딸; 이다)를 낳았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상황에서 러시아에서 생활하는 것이 어렵다 판단한 샤갈을 가족을 위해 1922년 러시아를 탈출했다. 난민처럼 떠돌다가 파리에 정착했다. 

 

「에펠탑의 신랑신부」, 마르크 샤갈, 1938

 

파리로 돌아온 샤갈의 그림에는 여전히 벨라와의 행복한 결혼생활이 묻어나 있었다.

 

하지만 1933년 히틀러가 독일 총리로 임명되면서 유대인 숙청에 앞장섰던 히틀러는 샤갈을 콕 찍어 제거해야 할 예술가로 취급했다. 나치는 1937년 '퇴폐미술전'을 열어 샤갈 그림을 전시했다. 

 

결국 샤갈은 미국으로 탈출했고, 이후 3년 후 벨라가 급성 간염으로 죽었다. 자신의 전부를 잃은 것과 같았던 샤갈은 붓을 놓았으나, 딸 이다의 말에 힘을 얻어 1년 만에 다시 붓을 들었다. 

 

샤갈의 과거에 경의를 표하다, 1945, MoMA」은 그의 벨라를 향한 그리움, 슬픔이 잘 묻어나는 그림이다. 

 

「과거에 경의를 표하다 」 ,마르크 샤갈,  1945, MoMA」

 

 

이처럼 현대미술을 감상할 때 필수는 아니지만, 최소한 작가에 대한 사전 지식을 알면 더 깊이 작품을 이해할 수 있다.

 


이창용 작가 친필 서명을 받은 신간 도서 「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에는 더 많은 작품에 대한 스토리가 담겨 있다 생각하도고 강연을 듣고 와서 아직 첫 장을 넘기지 못한 나의 게으름이 부끄러워진다. 

 

2019년 11월 프랑스 여행 계약을 완료해둔 상황에서 그 해 12월 우한 독감으로 알려져 급속도로 전파된 코로나19 사태로 여행이 무기한 보류되었다. 멋모르고 규모에 압도당해 진품이구나하며 얄팍한 지식 하에서 최대한 많은 작품을 훑어보기에 바빴던 과거와 달리, 훗날 루브르 박물관을 관람한다면 조금 더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2023년 1월 2일(월) 톡파원 25시에도 미깡 이창용 도슨트가 출연한다니 꼭 챙겨볼 예정이다.

 

강연회 끝날 때 사회자가 안내해 준 바에 따르면, 2월 5일 코엑스 별마당에서도 이창용 작가 강연이 있다 한다.

 

그 밖에 국방일보 인터넷에 연재하는 글이 있다 했는데, 기획 > 교양 > 작가와의 만남에서만 찾았다.

 

 

 

[작가와의 만남] 이창용

“미술관 데이트하며 그림도 설명해준다면 인생사 달라질 수도”이벤트 알바하다 우연히 도슨트 시작 프랑스로 건너가 공부·자격증 딴 뒤 루브르·오르세 등 10년간 활동 “미술, 자신의 취향

kookbang.dema.mil.kr

 

국방일보 > 기획 > 교양 > 현대미술이 있는 것을 처음 봤다. 박희숙 작가가 연재하는 칼럼이다. 

 

 

 

국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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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okbang.dema.mil.kr

 

 

올 3월에는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 - 스페인·네덜란드편(더블북)」이 출간될 예정이다. 스페인어를 배우고 있는 지금이기에 문화, 미술과 접목해서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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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 연휴와 맞물려 전쟁기념관에도 사람이 많을 거 같기에, 전쟁기념관 K-밀리터리 페스티벌에 다녀왔다. 

일정상 3시 30분 이후 도착해서 반절은 못 보나 싶어 아쉬웠는데, 의외로 4시 15분까지 태권도 시범단 공연이 펼쳐져서 다행이었다. 

 

전쟁기념관 호수 앞에는 2022 국방일보 보도 사진전 [전우, 우리 곁의 군인 이야기]이 펼쳐진다. 

인스타그램 인증 이벤트 등도 있으나, 인스타그램 업로드를 하지 않는 관계이기도 하고, 늦었으니 공연 관람 먼저~ ^^

 

건물 계단에서 정면 관람했으면 더 좋았을테지만, 육해공군 의장대 전열을 어느 각도에서든 잘 볼 수 있었다. 사진엔 안 담겼지만, 전쟁기념관 둥근 광장을 빙 두른 벤치에서 다들 여유 있게 멀찍이 관람하고 있다. 평일 낮에 열린 행사라서 그런지 의장대를 향한 박수 소리가 우렁차지 못함에 민망함도 있었지만, 관람객으로서는 더 여유롭게 느껴져서 좋았다. 

 

K-밀리터리 페스티벌 의장대 공연

 

하늘에 구름이 많이 있었지만, 오히려 너무 눈부시지 않고 무대 양옆 하늘은 햇살이 비춰서 그리 어둡진 않았다. 역시 사진으로는 실제 보던 것보다 더 멀리 찍히고 어두운 색감이어서 아쉽다. 

 

 

의장단 행사가 종료되고 태권도 시범단 공연을 준비하는 사이 계단쪽으로 이동해서 운 좋게도 앞자리를 점할 수 있었다. 중학생으로 보이는 남학생들이 단체로 왔나 했더니, 김해에서 단체수학여행을 왔다가 돌아가기 전 공연을 보러 왔다 한다. 그 친구들도, 내 아이도 조만간 저러한 늠름한 국인이 되어 국방의 의무를 다하겠지 싶다.

 

K-밀리터리 페스티벌 국군 태권도 시범단 공연

 

 

 

북장단에 웅장한 음향효과가 더해지는 가운데 펼쳐진 격파 시범은 더욱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곳곳에서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온다. 이러한 호흡을 맞추기 위해 얼마나 부단한 노력을 했을까 싶다.

 

 

 

더 감동적인 하이라이트 장면은 직관하자!

 

오늘도 완벽한 공연을 마친 태권도 시범단 경례

이들 모두 언제 어디서든 부디 큰 부상 없기를 바란다.

 

공연 전후, 꼭 보도사진전 관람하자.

 

전쟁기념관 _ 2022 국방일보 보도사진전

 

해군특수전전단 해난구조전대 조장진 준위

 

사진과 함께 실린 스토리를 보면서 눈물 찔끔, 콧등이 찡한 감동이 밀려온 건 나뿐일까?

각자 맡은 바 임무가 다르지만, 그들이 제 소임을 다하기에 이 땅에 두 발 편히 뻗고 오늘도 자는 거란 것을 새삼 깨닫는다.

 

2022 국방일보 보도사진전

관람 인증하고 스벅도 챙기기. 현장에서 인증샷 올린 거 확인되면 룰렛판 돌리는 이벤트도 추가로 참여할 수 있다.

 

2022 국방일보 보도사진전 인스타그램 인증샷 이벤트~

 

인증샷 이벤트들은 다 인스타그램으로 하던데, 부계정 하나 만들어 이벤트용을 만들어볼까 하는 유혹을 오늘도 꼭 참고 돌아선다.

 

전쟁기념관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공연 전후 전쟁기념관 전시실도 본다면 금상첨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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