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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 민화, 풍속화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도성대지도 (都城大地圖) : 국가문화유산포털 - 문화재청

문화재 검색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도성대지도 (都城大地圖)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

www.heritage.go.kr


먹고 살만하니까 양반만큼 문화를 누리고 집을 치장하고 싶어하는 욕구가 생김.

도성대지도


도성대지도 중 광통교 부분
- 만물상에서 서화 등을 팔기 시작

개항기(강화도조약 체결 이후~): 근대화 시기
- 개항기 공사관의 실상을 잘 보여준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추천!
- 외국인 들어오면서부터 시장 문화가 바뀌기 시작
- 산업혁명기를 거친 외국인들이 보기엔 너무도 신기한 나라
- 관광객보다는 선교사, 공사 등
- 19세기 식민지 개척 시대 활발... 식민지 문화, 생활용품 등을 다 수집, 구매
-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프랑스 김해 박물관
- 서양인을 상대로 하는 민속품, 풍속화 등이 시장에서 활발하게 거래됨.

- 일제강점기 이전까지 수출화를 대량 생산해서 판매하는 시기가 온다.

서양인에겐 김홍도보다 김준근

조선 풍속 소개 글귀로 한류 화가, 그림 1500점 중 1000여점 해외로 獨로텐바움 소장 79점 등 고국에조선 최고의 풍속화가로는 단원 김홍도(1745~?)나 혜원 신윤복(1758~?)을 따를 이가 없다. 하지만 서

www.seoul.co.kr


미술로서의 고려청자의 발견
- 조선시대 500년간은 고려자기에 대해서는 몰랐다. 무덤 부장품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 일본인들이 도굴을 해서 외국으로 미친듯이 팔았던
- 이토 히로부미도 고려청자광이었다.

[이기환의 Hi-story] 이토 히로부미의 16번째 죄악…고려청자 '싹 다!'로 조선을 도굴천지로 만든 것

역사는 히스토리, 히스토리는 이야기죠. 역사를 이야기로 들려주는 ‘이기환의 Hi-story’ 시간입...

m.khan.co.kr


서봉총 발굴
- 스웨덴 황태자 구스타프의 '서', 금관 장식의 봉황의 '봉'을 따서 서봉총이라 이름 붙임.

[주말 고고학산책] 스웨덴 황태자가 발굴한 경주 고분의 수난사

서봉총 발굴에 참여한 스웨덴의 구스타프 아돌프 왕세자.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경주를 가본 사람이라면 아마도 낮은 건물들 사이로 봉긋하게 솟은 오래된 무덤인 ‘고분’을 본 적 있을 겁니다

m.dongascience.com


- 임진왜란의 또 다른 이름 = 도자기 전쟁
- 일본에서는 도자기가 엄청난 고가로 팔렸기에 도공을 싹쓸이해서 데려가 개항기에 일본청자로 해외로 대량 수출
- 고려청자에 이어 조선백자로 눈을 돌려

우리 것을 보존하고자 하는 이들이 등장
- 간송 미술관 수장

* 인사동 오래된 화랑: 선 화랑, 국제 화랑
* 신사동/청담동 갤러리: 기획전/초대전 위주로 보면 좋다.
* 사설 미술관: 신사동 호림 기획전 등은 볼 만하다.
* 아트페어: 신진작가 작품이 많기는 하나, 종합선물세트라 생각할 수 있다.
* 갤러리에 가서 작가가 있으면 대화도 나눠보고, 큐레이터가 있다면 작가에 대해 질문을 많이 해봐야 한다.
흡사 집 구하러 다니는 것과 같다. 많이 보고 공부를 많이 하는 수 밖에 없다.
* 최근엔 RM이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작가의 인기가 급부상하는 경향이 있다. 유명인이 구매한 작품도 좋지만 자기가 맘에 들어야 한다.

# 경성미술구락부 경매장

- 국제적인 거상 야마나까 vs. 문화유산 지킴이 간송 전형필

[일제강점기] 간송 전형필, 국보를 되찾다 - 문화유산지킴이 - 한국사전

1936년 경성미술구락부 경매장. 조선과 일본에서 모여든 고미술 수집가들이 조선백자 한 점을 주시하고 있...

blog.naver.com


- KBS1 국보를 되찾다. 문화유산 지킴이 간송 전형필

국보를 되찾다, 문화유산 지킴이 간송 전형필 [DVD 녹화자료] | 국립한글박물관 한글도서관

부가기능 국보를 되찾다, 문화유산 지킴이 간송 전형필 [DVD 녹화자료] 상세 프로파일 상세정보 자료유형시각/영상자료개인저자한상권이상호단체저자명케이비에스.미디어서명/저자사항국보를

nuri.hangeul.go.kr


[233회] 역사저널 그날 - KBS

[조선의 억만장자 전형필, 국보를 지키다] 조선의 손꼽히는 부잣집에서 태어난 간송 전형필. 그는 문화재를 지키는 일이 일제로부터 우리 민족정신을 보전하는 일이라 판단하고, 국외 반출 위기

vod.kbs.co.kr


* 현재의 간송미술관은 보화각
: 1938년 간송 전형필이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 사립박물관
박길룡이 설계, 이탈리아 대리석과 일본 화류진열장 수입
- 몇 년 전까지는 년 2회 무료 개방을 하며 해마다 다른 테마로 전시하면서 매년 도록 판매를 통해 운영했으나,
최근엔 DDP와 연계해 간간이 전시를 하는 편

간송미술문화재단 |  우리문화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연결고리

kansong.org



일제 강점기의 미술 시장
1. 골동상과 경매시장을 중심으로 한 고미술품 거래가 시장을 압도적으로 주도
2. 전체 유통구조는 일본인이 주도, 작가의 유통 구조는 극히 제한
3. 전람회의 시대

# 이왕가미술관
- 이씨 왕조의 가문이라며 격을 낮춘 명칭
- 창경궁에 위치했으나 덕수궁 석조전으로 이전해 전시
- 일본 근대미술품 전시와 통합하여 일본인들 문화의 핵심이 됨.
- 현재 덕수궁미술관으로 개정

# 조선총독부미술관
- 조선총독부에서 1939년 경복궁에 세워 조선미술전람회 전시장으로 활용했던 미술관
- 각 지역에서 약탈해 온 문화재를 전시

* 아트테크는 동시대 화가의 가치가 높아질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고미술품은 가치가 너무 높으니까...


우리역사넷

권행가 흔히 우리나라 근대기 화랑의 효시를 1913년 김규진(金圭鎭, 1868∼1933)이 개설한 고금 서화관(古今書畵館, 석정동(石井洞), 현재 소공동 입구)으로 본다. 김규진은 대한제국 궁내부(宮內府)

contents.history.go.kr


1. 휘호회: 개인전을 통한 매매
- 유화와 달리 동양화는 소품 같은 경우는 즉석에서 그려서 판매가 가능

2. 공적 전람회(지금의 국전)에서의 작품판매
- 문화정책의 일환. 자생적이 아닌 관이 주도해서 생긴 것

# 갤러리의 전신인 '서화관(1913)' 등장
- 김규진: 영친왕의 서예 선생
- 고금 서화관은 자신이 작품을 팔기 위한 공간
- 우리나라 최초 사진관인 천연당 사진관(1907)을 세움.
- 당시까지만 해도 화상이 따로 없었다.
- 1937 화신백화점이 등장을 하면서 갤러리라는 개념이 생김.
- 화신 백화점(현재 종로타워 자리에 있던 건물)에 국내 최초 엘리베이터 들어가
- 신미술가 협회전: 일본/해외 유학 미술가가 그린 그림


# 조선물산공진회
- 일제강점기 시대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1915년 조선 식민 지배 정당화를 위한 5주년 기념 축하 사업의 지역구 박람회
- 개최 장소는 경복궁
- 대부분은 일본인 작품, 3.1운동 무서움에 조선인 작품도 일부 비중을 두어 전시

조선물산공진회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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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협회전람회
- 입장료가 비쌌다. 그림을 살 수 있는 돈이 있는 사람들에게 입장권을 팔았기에. 쌀 두 가마니 가격

조선미술 전람회
- 빨간 딱지(팔린 그림이라는 내화제도?)가 붙기 시작하던
- 이 때부터 직매가 가능하게 되었다.
- 소품은 후원가뿐 아닌 대중에게도 팔기 시작
- 도록, 엽서도 제작해서 대중에게 판매 시작
- 다만, 아주 유명한 작가 일부를 제외하고는 그림이 거의 팔리진 않았긴 하다.

* 이종우의 <모부인상>

'최초 프랑스 유학' 화가의 대표작, 어쩌다 김종필 손에?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종우는 1925년에 다시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난다. 한국인 화가로서 파리에 ...

blog.naver.com



나혜석(羅蕙錫)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aks.ac.kr


* 나혜석 첫 개인전 모습, 당시 5천 명 이상이 관람
- 국내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광복 이후의 미술시장
- 외국인들이 급처분하고 가는 골동품/수장품들이 대량 시장에 나옴.
- 간송이 보유한 작품 절반 가량도 영국인이 소장했던 물품을 통으로 구매했던 것. 그 중 상당수가 국보로 지정됨.


#반도호텔

조선호텔에서 쫓겨난 일본인이 화나서 지었다는 그 호텔 | 중앙일보

함경남도 흥남 질소비료공장과 압록강 수풍댐을 건설하고 운영했던 일본인 노구치 시타가후(野口遵·1873~1944)가 1938년 조선호텔 뒤에 새로운 호텔을 세웠다. 노구치는 총독부 철도국에서 운영하

www.joongang.co.kr


반도호텔 화랑
- 외국에서 들어온 국빈들이 수요자
- 서양화가 이대원이 운영
- 화랑 규모가 작았기에 10호 이하의 소품만 전시 판매
- 국내 유일의 상설 화랑
- 박수근 작품 인기가 많았다. 박수근(미군 PX 화랑부에 속해 있었다)

졸부들의 행진
중앙일보 1979년 1월 15일자
- 경제성장 급속화 시기
- 유동성 풍부!! 부동산 투기, 증권시장 급등 후 침체 기미 보이자 부동자금이 골동품, 미술품으로 몰리며 호황
- 강남아파트 입주: 고미술품 인테리어(1970년대)에서 서양풍 인테리어(1980년대)
- 갤러리는 "동시대(신진) 작가들의 작품만을 전시함"을 내세움.

우리역사넷

권행가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만을 본격적으로 취급하는 화랑이 증가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말부터이다.261)김기창, 「급증하는 화랑」, 『중앙일보』 1969년 9월 15일자. 인사동과 관철동 주변

contents.history.go.kr


# 호당 가격제
: 작가가 정하는 것
- 1970년 대 후반에 호당 가격제가 있었으나, 지금은 작가의 가치를 공개적으로 경매를 했을 때 가격이 형성된다.
- 한국 미술시장의 독특한 특징

--> 호당 가격제와 이중 가격제, 작가 직거래 관행

우리역사넷

1970년의 미술 시장 호황 때는 일부 부유층 고객과 유명 작가가 시장 흐름을 주도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 1970년대 미술 시장의 활황은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난 현상이 아니라 세계

contents.history.go.kr


- 작품 판매하면 화랑에서 30% 수수료를 줘야하기에 직거래까지 관행적으로 이뤄져
- 1980년 대에 유행
- 이제는 아트페어를 통해서 질서를 갖춰가고 있음.


주식 = 부동산 = 미술 투자는 비슷
-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투자를 해야한다. 투기가 아닌 투자!!
- 동시대 작가의 작품을 사서 후원자의 역할... 그들이 커나가고 후원을 양성, 가치를 높여... 선순환
- 그림 많이 보고 안목 키우기!!
- 투자를 할 수 있는 여러가지 방식에 대해서 알기(다음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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